정선~강릉 뒷길 드라이브
가을 초입에는 당연히 강원도로 간다. 단풍들이 슬슬 난장판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정선~강릉으로 이어지는 59~42~410번 도로 구간은 그 난장판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길이다. 도로 양편 산들에는 소나무와 각종 잎 넓은 나무들이 골고루 섞여 산다. 아름다운 경치 속에 진한 사연이 숨은 장소들도 있으니, 눈만 즐거운 여행도 아니겠다.
진부IC에서 나와 정선 방면으로 가다 보면 나전삼거리에서 골지천을 만나게 된다. 천변 도로를 타고 한참을 가면 아우라지가 나온다. 정선아리랑이 발원한 곳이다. 벌목한 통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한양으로 가는 남정네들과 여자들이 작별하던 곳이다.
구절리 쪽으로 향한다. 문 닫은 구절리역 주변 상가는 분위기가 영화 세트장 같다. 분위기는 분명 옛날인데 건물은 모두 새로 지었다. 그 기묘한 역전 주변에 있는 크고 작은 펜션들도 구경거리다. 역에서 5분만 더 가면 오장폭포가 나온다. 원래 물길이 있었지만 1980년대 산 위쪽 광산에서 갱도가 무너지면서 폭포 쪽으로 물길을 돌려 수량이 더 많아진 절반의 인공 폭포다.
자, 그리고 모정탑이 나온다. 모정탑은 정선과 강릉 경계 노추산에 있다. 노추산은 율곡 이이가 붙인 이름이다.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와 맹자가 태어난 추나라를 합쳐서 그리 붙였다. 여기 사람들은 율곡이 노추산 오장폭포 꼭대기에서 공부를 했다고 믿고 있다.
나이 스물셋에 강릉으로 시집 온 서울 처녀 차옥순. 네 자녀 가운데 아들 둘이 먼저 죽고 남편은 정신병을 앓았다. 끝없는 우환에 지친 그녀는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우환이 사라진다는 꿈을 꾸고 노추산을 찾아와 탑을 쌓았다. 26년 동안 혼자서 3000개를 쌓고서 나이 예순여덟에 하늘로 갔다. 전설 따라 삼천리가 아니라, 1986년부터 2011년까지 노추산 자락에서 벌어진 진짜 이야기다. 등산객들도 할머니와 함께 탑을 쌓았으니, 어찌 보면 돌탑에는 만인의 염원이 함께 담겨 있다.
이후 왕산면을 관통해 강릉으로 이어지는 410번 지방도는 운전자를 분통 터지게 만드는 길이다. 길 양옆에 솟아 있는 산들은 온통 기암 절경인데, 구불구불한 길 때문에 구경을 하지 못하게 하니 동행한 사람들만 신난다. 길 중간 왼편에 나오는 커피박물관에 들러서 커피 한잔하면서 그 분통 풀어보시라.
강릉 시내를 지나 바다로 가면 경포호가 나온다. 경포호 옆에는 경포습지가 있다. 습지였다가 논과 밭으로 개간된 곳이다. 50년 만인 2008년 습지 일부가 복원됐다. 그랬더니 한쪽에 가시가 비죽비죽한 큰 꽃들이 홀연히 피어나지 않은가. 반세기를 땅속에 숨죽이고 있던 연꽃 씨앗들이 부활한 것이다.
경포습지에서 산책로를 따라가면 허난설헌 생가터가 나온다. 난설헌은 뛰어난 문장가였으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나이 스물일곱에 요절했다. 두 아들도 일찍 세상을 떴다. 모든 글을 다 태워버리라고 유언했으나 동생 허균이 누나의 글을 모아 책을 펴냈고, 책은 중국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런 서글픈 여자가 경포호 서쪽에 살았다.
굴산사지는 또 어떤가. 신라시대, 미혼모가 울며 버린 아기를 산짐승들이 보호하자 어미가 다시 거둬 키웠는데, 그가 수도 경주로 가서 공부를 했고 다시 당나라로 유학을 다녀와 나라의 국사가 되었으니 그가 범일 국사다. 범일 국사는 강릉 단오재의 주신이다. 그가 고향에 지은 절이 굴산사다. 절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거대한 당간지주만 신전(神殿)처럼 서 있었다. 그런데 1936년 대홍수에 주춧돌과 기와가 나오고 2002년 태풍 루사에 담장과 초석, 기단이 홀연히 땅 위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 어인 일인가. 노추산 모정탑과 경포호 가시연과 굴산사 모두 이 같은 사연을 가슴에 품고 보시라. 가을 속에 빛나는 그 처연함을 읽어보시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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